Just Half Day in

SLOVENIA

딱 반나절동안 누빈 슬로베니아 여행
한 개의 도시도 아닌, 한 나라를 단 12시간 동안 누볐다. 유럽의 동남쪽에 있는 작은 땅 슬로베니아. 짧거나 혹은 길거나, 여행의 기쁨은 투자한 시간에 반드시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맛봤다.
아름다운 발칸 지역의 슬로베니아를!


작아서 좋은 나라

Z유럽 동남쪽의 발칸반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슬로베니아는 참 작다. 우리나라에 비교하자면 전라도에 견줄만한 크기, 인구도 2백만을 겨우 넘긴다. 그렇다고 해서 볼 것도 적다는 뜻은 아니다. 명성을 떨치는 여행지들이 주변에 널려있어서 그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지만, 일단 발을 들이게 되면 그만의 담백한 매력에 모두가 반하고 만다. 이탈리아에서부터 내려온 알프스 자락, 잘 보존되어 있는 중세도시, 거기에 짧지만 아름다운 해안선을 자랑하는 지중해까지, ‘유럽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슬로베니아에서의 12시간은 한참이나 부족하다. 제대로 느끼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머물러야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에게 시간은 늘 부족하기 마련. 여행하고 싶다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법이다. 류블라냐, 블레드, 포스토이나. 이 나라의 톱3로 꼽는 도시를 여행 리스트에 올렸다. 내 스스로 ‘골든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르고 싶은 슬로베니아의 알짜만 모은 핵심 여행. 오스트리아나 크로아티아 여행 중에도 잠깐 샛길로 빠져서 맛볼 수 있는 부록 같은 여행이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거친 매력의 포스토이나 Postojna
슬로베니아 남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대도시 류블라냐에서 5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흰색 암석들이 뚫고 나온 카르스트 지형을 만날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은 꼭 탐험하길 꿈꾸는, 무려 2백만 년의 세월에 걸쳐 탄생한 동굴이 지하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포스토이나 Postojna. 20.6킬로미터의 장대한 석회동굴은 1818년부터 전 세계 사람들을 슬로베니아 시골의 이 작은 마을로 불러들였다. 노란색 귀여운 코끼리 기차를 타고 동굴 깊숙이 4킬로미터 정도 들어가면 환상적인 동굴 탐험이 시작된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동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빌딩만한 크기의 종유석과 석순, 석주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서 2시간 남짓한 시간이 마치 모험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흘러간다. 동굴 탐험 후 들러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10분 거리에 있는 드라마틱한 자태의 프레드야마 성 Predjamski Grad이다. 마치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난 듯한 성은 123미터 높이의 절벽에 아찔하게 매달려 있다. 1202년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4층으로 지어졌고, 자연에 몸을 숨긴 독특한 형상으로 몇 번의 전쟁 중에도 들키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슬로베니아판 로빈 후드인 이차렘이 들키지 않고 지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사진 한 장으로도 유명한 블레드 Bled

워낙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라 슬로베니아라는 나라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지만, 블레드 Bled의 사진을 들이밀었을 때는 거의 대부분 친근함을 나타낸다. 적어도 어디선가 한 번쯤 본 적 있으며, 또 동경하는 풍경이라며 언젠가 꼭 가보리라는 다짐까지 전하며 말이다. 알프스 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알프스 산자락은 슬로베니아 북부까지 이어진다. 이름은 율리안 알프스 Julian Alps. 그 기슭에 있는 블레드는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호수가 하나 있다. 물빛이 고유의 돌바닥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맑은 빙하호. 일찍이 유럽의 부지족과 옛 유고슬라비아의 귀족들은 여기에 앞을 다투어 별장을 지었다. 현재의 슬로베니아인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드나든다. 수도인 류블라냐까지 겨우 51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니, 언제나 쉽게 오갈 수 있는 휴양지로서 전 국민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다.

고즈넉한 호반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물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섬이다. 총 길이가 30킬로미터를 넘기지 않는 짧은 해안선을 갖고 있는 슬로베니아에서 유일한 섬, 폴렌타 Polenta라고 부르는 나무배를 타고 섬 안에 세워진 교회에도 가볼 수 있다. 결혼식 장소로도 인기 있으며, 9세기에 지어진 아담한 교회에는 3번 울리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종도 있다. 섬 너머로 보이는 절벽 위의 블레드 성 Blejski Grad과 함께 멋진 풍광의 궁합을 이뤄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지만, 진짜 현지인은 사실 교회나 성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해변의 일광욕에 목마른 사람처럼 한 걸 같이 잔디밭에서 훌딱 벗고 누워 광합성을 하고,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카누에 올라 노를 젓거나 패들 보드에 오르며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호수를 즐긴다. 외지에서 찾아온 여행자는 블레드 섬의 정면이 잘 보이는 선착장에만 주로 머물다가 떠나지만, 메인 도로에서 5~10분 정도 조금 더 들어가면 지역 사람으로 붐비는 캠핑장과 모래사장이 나온다. 가만히 눈으로 바라보는 것 말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이 더 즐겁다. 옷통을 벗고 잔디밭에 누워 발가락 사이로 보이는 섬 안의 교회를 감상하면서.


류블랴나는 낮보다 밤이라네 Ljubljana

국토 중심에 위치한 대도시, 류블랴나 Ljubljana는 슬로베니아의 문화, 사회, 경제, 정치, 행정의 수도다. 시내 중심으로 류블랴니차 강이 흐르고, 녹음으로 가득한 티볼리 공원과 스마르나 산이 있는 청정 도시이며, 베네치아와 부다페스트, 비엔나와 자그레브가 2~4시간 거리에 있을 만큼 최고의 접근성을 자랑한다.


류블랴나의 첫인상은 이러하다. 작지만 세련되고 매력이 있다는 것.

가장 큰 이유는 어느 건축가의 마법 때문이다.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마스터 요제 플레치니크 Joze Plecnik의 손길에서 탄생한 멋진 건축물들이 도시의 여기저기를 채우고 있다. 프레세렌 광장의 핑크빛 수태고지 교회 앞에 세 개의 석교 다리가 마치 쌍쌍둥이처럼 이어져 있는 독특하나 말끔한 트로모스토브예 Tromostovje도 그의 작품이다. 1895년의 지진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재건된 도시는 우아한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류블랴나 성을 비롯해 중요한 역사 건축물과 볼거리가 있는 구시가는 류블랴니차 강 동쪽에, 박물관과 갤러리가 몰려 있는 현대적인 도심은 서쪽에 위치한다. 특히 구시가지에 자동차 도로를 아예 없애버리고, 보행자 전용 거리를 대폭 늘리면서 류블랴나는 깨끗할 뿐 아니라 살기 좋고, 여행하기도 좋은 도시로 거듭났다. 차 없는 거리를 마음 놓고 편하게 걸으며 둘러보는 도보 여행이 류블랴나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다.